바람연구소

바람연구소 - 2023

김정은
김정은

@seroly

송풍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바람이 벤틸레이터를 움직이듯, 타인은 나의 주체를 강제로 흔들어왔다. 하지만 벤틸레이터는 이탈하지 않고 자리를 지킨다. 축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이 반복적 회전은 피동적 순응이 아니라 주체적 적응 과정이 되고자 하는 움직임이다. 상황에 따라 교환되는 가면은 개수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무분별하게 생성되었다. 가면은 타인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굴복의 산물이 아니다. 그것은 유동적이고 불안정한 사회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막'이 되어 준다. 가면은 나로부터 파생된 분신과 같은 존재이고 결국 모든 가면은 나의 주체를 내포하고 있다. 주체를 품은 가면의 전회는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가졌으며 혼동하지 않고 주체로의 회귀를 이루어 낸다.

나는 주체와 가면의 자리를 명확히 하기 위해 '사이'라는 요소에 집중한다. 사회적 가면인 페르소나는 주체의 얼굴 앞에 서서 사회와 대면한다. 나는 만나는 상대에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가면을 무분별하게 만들어 냈다. 그 개수가 늘어날수록 주체와의 경계는 흐려지고 서로의 영역을 침범한다. 그러한 위험성을 가졌더라도 페르소나는 원만하게 사회를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나는 주체와 페르소나가 공존할 수 있도록 적절한 사이를 유지하여 서로의 균형을 이루어 내고자 한다. 그 사이가 존재함으로써 페르소나는 쓰고 벗고 교체할 수 있는 여지를 가지게 된다. 얼기설기 쌓인 제주 돌담의 돌 틈이 바람의 통로가 되어 견고함을 더해주듯이, 가면과의 간극은 주체의 숨구멍이 되어 자리를 지켜낼 힘이 되어 준다. 나는 작품을 통해 수많은 가면을 붙였다 떼어내며 주체와의 적절한 간극을 찾아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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