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흔적을 지우고 가림막이 설치된 장소는 잠시 동안의 충격과 놀람, 그리고 공허함을 불러일으킨다. 묵묵히 때로는 처절하게 삶을 살아낸 풍경들이 한순간에 무너지고 나면 말끔한 가림막이 세워지고 그로부터 장소에 대한 기억은 빠르게 산화된다. 제각각 특징이 있던 골목과 동네가 장소성을 잃은 공사장으로 둔갑하고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진다. 나는 공사 현장의 가림막과 끊임없는 아파트 개발의 상황을 Blind로 인식하였다. Blind란 흔히 창을 가리는 물건을 말하기도 하고 맹인, 맹목적인, 걷잡을 수 없는 이란 의미도 있는데 거대한 개발 현장을 볼 때마다 맹목적인 도시에서 눈뜬 맹인이 되어 살아가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공사 현장의 가림막이 만들어낸 풍경에 관심을 가지고 작업하였다. 가림막으로 일상의 풍경이 칼로 자른 듯 나뉘어 어떤 것은 사라지고 어떤 것은 더 선명하게 드러났다. 가림막 앞으로 부단히 걸어가는 사람이 보였다. 주변의 풍경과 상관없다는 듯 빠르게 걸어가거나 무심한 듯 스마트폰을 보며 신호를 기다렸다. 거대한 개발에 비해 작고 나약해 보이지만 살아 숨 쉬는 존재였다. 공사 현장의 가림막에 대비되어 그 모습이 더 뚜렷이 보였다.

Blind - 2023
김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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