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린 이야기

빌린 이야기 - 2023

윤아미
윤아미

@mypdt

상실은 언제나 우리의 삶 속에서 빈번히 발생하지만 우리는 모든 아픈 시간을 다 기억하고 살아가지 않는다. 그러나 때로 현재와 무관하거나 연계성 없는 상실의 기억이 불현듯 떠올라 평온한 현재를 흐트러뜨리기도 한다. 「빌린 이야기」는 과거의 망각된 기억이 어떤 기제로 인하여 현시점에서 다시 의식으로 불려오는지 에서 출발한다. 의식과 무의식의 상호관계 속에서 긍정과 부정의 판단을 유보하고 단지 모호함으로 재현되는 ‘기억’에 관심을 두었다. 상기와 망각을 거치는 기억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으로 기억의 환기가 단순한 사실의 재현에 앞서 인식의 확장에 영향을 미침을 발견하게 되었다.

나는 삶에서 겪는 일련의 사건들에서 비롯된 감정들과 남겨진 기억들을 중심으로 작업해 왔다.「빌 린 이야기」또한 그 연장선에 있는 작업으로, 여기에서는 본인이 실제 경험한 몽유병을 소재로 한다. 잠에서 깨어나는 과정에는 꿈과 현실을 구분할 수 없는 찰나적인 반의식의 순간이 있다. 이러한 반의식의 상태에서 사람들은 잊고 지냈던 기억이 불현듯 상기되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나는 이런 ‘반의식 상태에서 상기되는 기억’으로부터, 현실을 비현실로 전복시킬 정도로 큰 힘을 경험했다. 불분명하고 모호한 형태의 기억은 나의 환상과 욕망이 더해져 또 다른 기억으로 재구성되었 다. 이러한 경험은 일상에서 상기와 망각을 반복하는 ‘기억’에 대한 의구심을 갖게 하였다. 현실과 비 현실이 혼재된 기억의 환기가 반복되면서, 그 속에서 실재하는 기억과 실재하지 않는 기억에 대한 구분에 집중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사이를 나누고 경계 지을수록 뚜렷해지는 것은 두 영역의 특성이 혼재된 점이지대였다. 이것은 무엇도 인지할 수 없는 ‘텅 빈 공간’이었으며, 때로는 여러 가능성이 내 재된 ‘잠재 공간’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것은 의식도 아니고 무의식도 아닌 ‘반의식’ 상태에서의 ‘사이 체험’이었다. 「빌린 이야기」는 이러한 ‘잠재 공간’과 ‘반의식 상태’를 시각화하는 작업이다.

‘잠재적인 빈 공간’을 표현하기 위해 일어나 잠이 덜 깬 상태에서 보게 되는 공간인 천장을 현실과 꿈이 투사되는 화면 같은 것이라고 설정했다. 동시에 어린 시절 겪은 몽유병을 모티브로 하여 즉흥적인 행위를 하는 셀프 포트레이트를 만들었다. 사소하며 지극히 일상적인 풍경 속에서 일순간 모든 지각대상들이 낯설어지는 순간이 있었다. 나는 이러한 내적 환기를 재현하기 위하여 연출방식을 선택한다. 이것은 ‘다시 읽기’와도 같은 것이며, 다시 읽혀진 기억은 새로운 의미를 낳아 갔다. 풍경에서 오는 즉각적인 연상의 반복 속에서 단발적인 기억에 매달리고 그 인상을 포착하기 위해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모든 감각과 심상을 기록한다. 나의 환상 속에서 기이하고 낯설어진 현실은 심리적 갈등과 혼란을 만들어내고 이를 꿈처럼 남겨진 기억으로 재현한다. 나에게 있어 ‘몸짓’은 지극히 개인적인 사건에 뿌리를 두고 있다. 「빌린 이야기」에서는 자기 공격적이거나 무기력한 몸짓들이 반복된다. 기이한 행위들의 열거는 혼란스러웠던 시간의 재현이기도 하며, 논리적이거나 명확하지 않는 기억의 재현이기도 하다.

실제로 작업을 진행하면서 대면하게 된 공간들을 통해서 지나간 기억이 환기되고 동시에 과거의 기억이 다시 재구성되어 연결되는 경험을 했다. 이는 ‘체험의 사실’보다도 앞서 중요했던 ‘체험의 주관적 기억’을 상기하는 과정이었다. 기억의 환기는 보존된 과거의 재현이 아니다. 그것은 언제나 변태 속에 있으며, 쇄신을 준비하고 있는 창조인 것이다.

일상적인 시선에서 비가시적이었던 것을 가시적으로 만들어주는 것, 정신적 영역을 물질로 전환하 는 것, 이것이 바로 사진이다. 나의 환상적 사유는 사진위에서 현재를 살아가도록 허락 받는다.

「빌린 이야기」 작업 노트 중

Supporting Images/Videos